하루를 여는 말씀 40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하루를 여는 말씀

  • 검색

Total 540건 40 페이지
  • 228
    최고관리자Aug 10.2017 "연단 ㅡ 주님께 가까이"
    하루를 여는 말씀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이 쓰신 책 "올인"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우리의 헌신을 기뻐 받으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놀라운 사역과 비전의 현장으로 곧장 인도하시지 않는다. 그 반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땡볕이 내리쬐는 광야로 인도하신다. 모든 의지할 만한 것들을 제거하시고, 그분을 향한 우리 마음을 불도가니 속에서 녹여 솎아내듯 연단하신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지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부르심에 대한 확정을 받게 된다. 만약 이 과정을 건너뛰면 어떻게 될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을 통과해도 우리는 연약하여 때때로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바닥을 치고 완전히 깨어져 자기 마음의 중심과 동기가 철저히 검증되고 연단 받은 심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라. 이런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로 더 깊이 그분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이런 시간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감사한 것은 막상 그런 시간 앞에서는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실상은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모든 일이 있은 후에도 넘어지지 않고 온전히 주님 앞에 서는 제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훈련, 제자의 삶, 연단에 대한 너무도 귀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 알수 있는것은 훈련과 연단은 힘든것이지만 그 과정이 내가 하나님께로 한걸음 더 나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돌아가고, 조금은 힘들어도 그 길을 함께 해주시는 주님이 계서 감사하고, 그 길 끝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감사한것입니다. 오늘 제자로, 하나님께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훈련의 날이기에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Read More
  • 227
    최고관리자Aug 05.2017 "감사를 넘어 찬양으로"
    하루를 여는 말씀   시편 150:6 “숨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감사하는 삶보다 더 높은 단계의 삶이 찬양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로하여금하나님을찬양하게하기위한것이기에 성도의 삶은 찬양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노래를 포함한 성도의 고백, 삶,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이 됩니다. 감사의 삶도 신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에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한다는것은곧신앙의결과이기때문입니다.   이제 감사의 삶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그 감사를 하나님께 어떻게 표현하고, 그감사의삶을성도의삶으로나타내는것이찬양의삶입니다.   어느 기도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감사를 하고, 그다음그것으로인한찬양이나오는글입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 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미워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기도문처럼 감사하는 삶에서 그상황을주신하나님을찬양하는하루가되기를소망합니다.
    Read More
  • 226
    최고관리자Aug 02.2017 "진정 찾아야 할 것"
    하루를 여는 말씀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나옵니다. 말씀을 들으려, 구경하러,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장소가 광야에서 교회로 바뀌었을뿐 사람들의 이유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셨습니다. 구원과 멸망, 복과 저주, 천국과 지옥, 알곡과 가라지....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동일하게 죄에서 구원 받고 천국의 복을 이땅에서 누리며 그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군중이나 지금 현실교회의 성도들이나 그 영생의 말씀과 성결한 삶에 대한 것인 잊어버리고 가르침 다음에 보이신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억합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영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필요한것을 채워주시는 주님 곁에만 머물러 그분의 오병이어만을 바랄때, 예수님은 그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말씀 묵상을 통해, 기도를 통해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과 사명을 찾는지 아니면 삶에 필요한 오병이어만 찾고 있는지... 영생은 말씀에 있지 오병이어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안에 오병이어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 영적인 바른 삶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오병이어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쫒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ad More
  • 225
    최고관리자Aug 01.2017 "들을 준비"
    하루를 여는 말씀 잠언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주일날 강단애서 설교할 때 설교를 듣는 성도들늘 세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설교를 진진하게 듣고 마음으로 받는 성도들, 설교를 귀로만 듣고 있는 성도들, 설교를 전혀 듣지 않고 쳐다만 보는 성도들.. 그러기에 은혜를 받는 정도도 다르게 나옵니다. 흔히 설교가 좋아야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맞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를 뿌리는 것은 이런저런 밭을 가리지 않습니다. 밭이 문제입니다. 밭이 좋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를 설교단에 세우면서 “이 목사가 설교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보다 더 시급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목사의 설교를 들을 자격을 갖추고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성도가 설교를 들으러 올 때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면, 주님이 그들에게 보내주신 촛불이 크던 작던 간에 그 촛불에서 아주 많은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하나님은 때로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귀로 들어도 사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해야합니다. 천지만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하는 자세로 한주를 살면, 주일 아침 설교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것입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ad More
  • 224
    최고관리자Jul 31.2017 "그 안에서"
    하루를 여는 말씀 에베소서 3:20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우리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간구합니다. 때로는 물질을, 때로는 건강을, 때로는 성령충만을,... 여러가지 이유와 내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도하고, 어떻게 기도하느냐에는 많은 공부를 합니다. 하지만 그 기도를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 시작을 알리는 찬양이 내가 기도하는 것 보다 더욱 응답하실 하나님 나의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 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 응답, 능력은 내가 그분 안에 있을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하신다는 뜻은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식하며 살때 그분이 나를 위해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식하며 살때 그분의 능력이 내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무엇인가를 기도할때, 먼저 내가 주님 안에 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내가 주님을 의식하며, 그분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지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주님을 의식하며 주님을 바라보며사는 하루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ad More
  • 223
    최고관리자Jul 29.2017 "진짜와 짝퉁"
    하루를 여는 말씀   고린도전서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세상에서도 진짜가 있고,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짝퉁이 있습니다. 진짜하고 똑같이 만들었고, 보인다고해서 그것이 진짜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도 진짜신앙이 있고, 짝퉁 신앙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진짜인지? 아니면 짝퉁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짝퉁 신앙은 TV 드라마 보면서도 “아멘, 아멘” 하고, 기도원 다닌다고 남편과 아이들 밥도 안 해주고, 집안 청소도 안 해놓고 다니는 주부가 가진 신앙은 짝퉁 신앙입니다. 불신자 남편이, 아내가 화를 내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다”라고 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짝퉁 신앙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가 있고 성경 공부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가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고, 불성실하게 직장생활하고,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 남을 속이고, 생활에서 거룩함의 열매가 없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짝퉁 신앙입니다.   다니엘 처럼 항상 기도하며 영적 환상을 보고 말씀의 계시를 받는 진짜 신앙은 현실 세계에서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언제나 자신의 단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우리는 진짜 신앙과 짝퉁신앙을 구분할 줄 아는 영분별력이 있어야합니다. 내 신앙 진짜인지 짝퉁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의 방법이,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 내 가정이 가는 방향이 진정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비슷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가는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이 진짜인지, 짝퉁인지를 깊은 묵상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통해 구분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Read More
  • 222
    최고관리자Jul 28.2017 "자녀의 특권"
    하루를 여는 말씀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자녀가 누릴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자녀의 특권 아버지의 능력을 삶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 즉 맞아드리는 것입니다. 맞아드린다는 것은 손님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왕이 죽고나서 이스라엘 10개지파 족장들은 왕의 왕관을 가지고 다윗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왕이 되어줄것을 요구합니다.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것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자녀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주인이 되고 나의 왕의 자리로 모셔서 나의 모든것이 그분것임을 고백하는 자가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자녀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것이 되고,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임을 마음으로 인정하는지, 그리고 삶으로 그것을 고백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녀의 모습만 가진 헛된 신앙이 아니라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나의 사명입니다.
    Read More
  • 221
    최고관리자Jul 25.2017 "만족"
    하루를 여는 말씀 고린도후서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성도는 삶의 만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세상은 세상의 방법으로 만족을 찾고 가지려 하기에 결코 만족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나 내가 없는것, 부족한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기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만족함은 내가 있는 환경, 내가 가지고 있는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믿고, 그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믿어질때 가져지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환경에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사람이나 환경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살았기 때문이고, 성공이나 성취욕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고, 낮은 지위에서 벗어나 높은 지위를 얻고, 실패에서 벗어나 성공하는 데 둡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며 또 기도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할때 모든 상황은 복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하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묵상하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Read More